세계(정치)경제사 - 2차 대전 이후부터 그리스 위기까지
세계(정치)경제사
2차 대전 이후부터 그리스 위기까지
CDO 제조방법
•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부채담보부증권
• Collateralize : [타동사] <대출금을> 담보 물건으로 보증하다; <유가 증권 등을> 담보 물건으로 쓰다
• CDO란 일종의 자산담보증권으로, 금융회사가 자신이 가진 자산들인 주택담보 대출금, 기업 대출금, 학자금 대출금, 자동차 대출금 등을 기초로 만든 채권을 섞은 후 다시 잘라 만든 채권
CDO 제조방법
• 10%의 채무불이행 확률을 가진 두 개의 채권이 있다고 하자.
• 채무불이행(default)의 경우 0달러, 그렇지 않을 경우 1달러를 받을 수 있다.
• 이 두 개의 채권을 하나의 포트폴리오에 섞에 되면 기초 자산의 총명목가치는 2달러가 된다.
CDO 제조방법
• 이를 두 개로 잘라서 각각 1달러의 트랑세(tranche)를 만든다.
• 즉, 선순위 트랑세(senior tranche)와 후순위 트랑세(junior tranche)로 나눈다.
• 여기서 트랑세(tranche)는 프랑스어인데 영어의 slice의 의미(금융권에서 어려운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금융을 신비화하고 어렵게 해야 자신들에게 일반인들이 의지할 수 있기 때문)
CDO 제조방법
• 후순위 트랑세는 하나 이상의 채권이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에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1달러를 보상받는다.
• 선순위 트랑세는 두 채권 모두가 채무불이행을 할 경우만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1달러를 보상받는다.
CDO 제조방법
• 후순위 트랑세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19%가 된다(1-0.9*0.9=1-0.81=0.19)
• 선순위 트랑세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1%가 된다(0.1*0.1=0.01).
• 기초 자산의 평균 채무불이행 확률(10%)보다 낮기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받을 수 있다.
CDO 제조방법
• 이 계산법은 두 개의 기초 자산이 서로 독립적이라고 가정하는 것.
• 주사위 3개 던졌을 경우 특정 숫자들이 나올 확률 계산법과 같은 것.
• 주사위 각각은 서로 독립적이므로.
CDO 제조방법
• 이제 세 개의 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한 트랑세를 만들어 보자.
• 세 개의 채권 모두가 채무불이행할 할 경우 손실을 보는, 선순위 트랑세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0.1%가 된다(0.1*0.1*0.1=0.001).
CDO 제조방법
• 두 개 이상의 채권이 채무불이행을 할 경우 손실을 보는, 메자닌 트랑세(mezzanine tranche)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2.8%가 된다(0.9*0.1*0.1*3+0.1*0.1*0.1=0.027+0.001=0.028).
• 메자닌(mezzanine)은 이탈리아어로, 영어의 middle의 의미
• 한 개 이상의 채권이 채무불이행을 할 경우 손실을 보는 후순위 트랑세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27.1%(1-0.9*0.9*0.9=1-0.729=0.271)
CDO 제조방법
• 이처럼 풀 안에 하나의 기초 자산을 추가해 세 개의 CDO를 만드는 것만으로 자본의 2/3는 기초 자산의 위험보다 작은 위험을 갖게 되었다.
CDO 제조방법
• 앞서 두 개의 채권을 풀로 하여 만든 CDO 중 후순위 트랑세의 채무불이행 확률은 19%였다.
• 여기에 똑같은 채무불이행 확률(19%)을 가진 또 다른 후순위 트랑세를 섞어 새로 발행한 선순위 트랑세는, 두 개의 후순위 트랑세가 모두 채무불이행할 경우에 손실을 보는 CDO로, 채무불이행 확률은 3.61%가 된다(0.19*0.19)
• 이는 본래 후순위 트랑세의 채무불이행 확률 19%보다 훨씬 낮다.
CDO 제조방법
• 금융공학과 수학이 현실을 호도하는데 이용된 것.
• 상호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초 자산을 결합하면서 기초 자산 간의 상관관계를 무시한 것.
• 한때 미국 투자은행 3위였다가 파산하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합병된 메릴린치가 2007년 AAA등급으로 인정한 30개의 CDO 중 27개가 정크 본드 수준이었다.
공매도(short-sale, 空賣渡)
• 공매도란 현재 자신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금융상품을 매도하는 거래행위를 말한다.
• 나중에 같은 금융상품을 매수하여 포지션을 정리한다.
• 일반적으로 공매도를 하는 사람은 남의 상품을 빌려서 매도하고 매도대금을 받게 되며, 나중에 되사서 원래의 주인에게 금융상품을 돌려준다. 물론 빌리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공매도(short-sale)
• 다른 금융상품보다도 주식에 대한 공매도가 가장 활발하며,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값에 주식을 되사서 원주인에게 돌려 줄 목적으로 공매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 예상대로 된다면 주식을 비싼 값에 팔고 싼 값에 사는 것이니 차익을 얻을 수 있다.
• 이 사람들은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에 배팅하는 셈이다.
공매도(short-sale)
•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현재 1만원인 A 주식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여 중개인을 통해 B에게 100주를 차입하여 즉시 매도했다고 가정해보자.
• 한 달 후 주가가 20% 하락하여 8,000원에 거래될 때 다시 A주식 100주를 구입하여 B에게 상환하면, 20% 수익 20만 원을 벌게 된다.
• 따라서 공매도한 주식의 가격이 떨어질수록 수익률은 높아진다.
조지 소로스와 공매도
英 • 伊 뒤흔든 ‘統獨 쇼크’
• 1992년 영국 파운드와 이탈리아 리라는 ERM 체제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1990년 10월의 독일 통일이다.
• 통일 독일은 동서독 격차를 최대한 빨리 줄이기 위해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정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 산업경쟁력이 약한 동독의 체급을 무리하게 올려서 평가하는 바람에 그 상향평가의 대가로 인한 통화 발급 부담은 고스란히 서독이 짊어져야 했다.
조지 소로스와 공매도
•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아울러 동독에 대한 적극적 재정 지원으로 인한 재정 부담마저 가중되자 독일 정부는 고금리를 통한 금융긴축정책 카드를 꺼내 든다.
• 이는 당시까지 유럽에 퍼져 있던 ERM 체제의 관성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불렀다.
• 당시 독일은 일본처럼 공업국으로서의 강화된 위상을 바탕으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공고하게 유지됐다. 따라서 넘치는 돈을 가둬둘 필요 없이 저금리로 방치하는 전략을 썼다.
조지 소로스와 공매도
• 투자자들은 마치 2000년대 초중반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엔화를 팔고 상대적 고금리 통화를 구입해 운용 수익을 높이는 전략)처럼, 마르크를 팔고 대신 고금리인 이탈리아 리라나 스페인 페세타, 영국 파운드를 사서 운용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 1992년은 영국 파운드화에 치욕의 한 해였다.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헤지펀드 ‘퀀텀펀드’에 공격당해 통화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바람에 ERM 체제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지 소로스와 공매도
• 퀀텀펀드는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서 벗어난 외화 가치는 언젠가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 마침 높은 물가상승률과 강성 노조, 과도한 사회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이른바 ‘영국병’을 앓고 있던 영국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 경제 체력 저하에 따른 환율 저하 요인이 분명함에도 시장 참여자들이 그동안은 ±2.25%의 변동만을 허용하는 ERM 체제, 즉 유럽 역내의 정부 간 합의 때문에 행동에 나서길 주저했다.
조지 소로스와 공매도
• 독일의 고금리 정책에 따라 시장참여자들이 ‘파운드 매도, 마르크 매수’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란 확신을 가진 퀀텀펀드는 1992년 9월 보유하던 영국 파운드를 시장에 투매하며 일거에 파운드 하락을 부추겼다.
•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자국 기준금리를 3일새 10%에서 12%, 15%까지 올렸으나 여타 기관들까지 동참한 연쇄투매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파운드화 가치는 금세 20% 가까이 폭락했다.
조지 소로스와 공매도
• 퀀텀펀드는 특히 차입과 공매도(空賣渡)를 통해 2주 만에 10억 달러, 2년 동안에 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이익률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쉽게 말하면, 빌린 돈으로 파운드화 매도 포지션(수중에 파운드가 없지만 먼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일종의 옵션 상품)을 잡고방법이다.
공매도(short-sale)
• 공매도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 하나는 말 그대로 없는 주식을 미리 파는 무차입 공매도(네이키드 쇼트셀링•naked short selling)이다.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먼저 판 다음 결제일이 오기 전 시장에서 되사 대여자에게 반환하는 과정에서 차익을 얻게 된다.
공매도(short-sale)
• 또 다른 방식은 빌려온 주식을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커버드 쇼트셀링•covered short selling)이다. 기관 등에서 보관시킨 주식을 갖고 있는 한국예탁결제원이나 증권사 등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하는 형태를 가진다.
• 엄밀히 말하면 좁은 의미의 공매도는 무차입 공매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주식 없이 공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는 금지돼 있다.
세계경제사 시대구분
• 브레턴우즈 체제(2차대전 이후-1970년대 초반)
• 달러-월스트리트레짐(DWSR, 1970년대 초반-1990년대 후반)
•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불균형(1990년대 후반-2008년)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현재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 1944년 7월 1일, 인파 수백 명이 허겁지겁 새로 꾸민 마운트워싱턴호텔에 몰려들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다.
• 바야흐로 미 재무부의 떠오르는 별인 해리 덱스터 화이트가 솜씨 좋게 화이트산맥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개최될 국제통화 회의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 2년 반이 흘렀다.
• 44개국에서 온 대표단은 총 700명이 넘었다.
벤 스틸, <브레턴우즈 전투>,
브레턴우즈 체제
•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기본틀로 작동해 왔던 브레턴우즈 체제에서는 안정된 국제통화질서를 위해 금 1온스 당 35달러로 금에 대한 달러의 가격을 고정시키고 달러화의 무제한 금태환이 보장되었으며, 다른 나라들은 달러에 대한 자국통화의 가격을 고정하여 이 가격을 마음대로 변동시키지 못하게 하였다.
브레턴우즈 체제
• 또한 이 체제 하에서 민간 금융자본의 이동은 엄격히 규제되고 있었다.
• 미국 재무부 장관 헨리 모겐소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국제금융의 사원에서 고리대금업자들을 몰아내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그래서 각 국가들에게는 모든 자본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명시적인 권리가 주어졌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 하지만 미국의 재정적자 누적, 해외 군사지출 증가, 민간자본의 해외유출 등의 이유로 미국의 금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트리핀 딜레마로 인해 달러의 가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금가격이 인상될 것을 기대한 투기세력의 ‘골드러쉬’가 일어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미국은 더 이상 금태환을 지속한 능력도 의지도 없어지게 된다.
• 결국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태환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선언한다.
=>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 트리핀 딜레마란?
• 1958년 예일대 교수 로버트 트리핀이 지적한 것으로, 기축통화의 가치와 국제유동성 간의 모순을 지적한 유동성 딜레마를 말한다.
• 국제무역의 증가와 유동성의 공급을 위해서는 미국이 국제수지 적자를 통해 달러화를 점점 더 많이 공급해야 하지만 이 과정은 달러화의 가치와 금과의 태환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 또한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대체되는 과정과 함께, 1970년대부터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차례로 자본이동의 자유화 조치를 취하게 된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 자본 이동 자유화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였다.
오일쇼크
•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1973년 걸프 산유국들이 유가를 대폭 인상한 것은 제4차 중동전과 관련하여 반이스라엘 및 반미정책의 일환이었다고 믿고 있다.
• 그러나 오늘날 알려진 바와 같이 유가폭등은 미국이 산유국에 영향을 끼친 결과이자 서유럽의 미국 ‘동맹국들’과 일본을 겨냥한 교묘한 경제운용술책의 일환이었다.
오일쇼크
• 닉슨 행정부가 유가폭등을 유도한 것은 국제금융관계에서 미국의 민간은행들이 새로운 역할을 맡게 하려는 정책적 고려가 깔려 있었다.
• 닉슨의 주된 정치적 목적은 국제 금융상황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중동 석유 의존도가 크게 높았던 일본과 유럽의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었다.
오일쇼크
• 미국 정부는 유가폭등으로 산유국들이 자체 생산부문에서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달러 수입을 얻게 될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 이같은 유가폭등은 동시에 원유 수입 코스트의 급증으로 수많은 국가들을 심각한 무역적자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란 점도 잘 알고 있었다.
• 따라서 이른바 오일달러는 서방 금융제도를 통해 걸프 산유국에서 비산유국으로 순환될 수밖에 없었다.
오일쇼크
• 다른 나라들은 이런 오일 달러가 IMF를 통해 환류되기를 바랐다.
• 그러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구미 지역의 민간은행들이 석유 달러의 환류를 매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 또한 미국은 1974년 자금의 유출입에 대한 규제, 즉 자본관리를 철폐함으로써 석유달러의 환류에 물꼬를 텄다.
달러-월스트리트 레짐
• 이러한 미국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미국에게 상당한 정책적 자율성과 함께 다른 나라들을 압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 우선 미국은 국제수지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되었다. 미국 외의 모든 다른 나라들은 외국과 교역을 하려면 달러와 같은 국제통화를 벌어들이거나 빌려와야 한다.
• 하지만 미국은 적자가 나도 달러가 국제통화이기 때문에 그저 미국 안에서 달러를 찍어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달러-월스트리트 레짐
• 또 미국은 자국통화로 국제결제를 하기 때문에 환율 변동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되었으며, 금리조정이나 재정지출 등으로 달러 가치를 등락시킬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나라를 압박할 수 있었다.
제3세계 외채위기
• 한편 전 세계적인 자본이동의 통제가 제거되고 막대한 오일 달러가 미국과 유럽의 민간은행을 통해 환류되는 과정에서, 민간 은행들은 경기 침체 속에 있는 제1세계가 아니라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던 제3세계 각국 정부들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 한편 채무국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율에 고무되었다. 당시는 오일쇼크로 인해 인플레가 매우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질 이자율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제3세계 외채위기
• 이러한 상황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외채가 급격히 증가
제3세계 외채위기
• 1979년 8월 미국 카터 대통령은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임명
• 그리고 볼커는 10월 6일 대단히 엄격한 통화정책을 발표하는데 이것이 고금리와 달러강세를 추구하는 저 유명한 정책전환이다.
• 이러한 볼커의 정책으로 인해 1971~80년대 동안 평균 0.8%였던 은행대부의 실질이자율은 1982년 11%로 급등하는데 이러한 고금리는 제3세계를 강타하였고 라틴아메리카를 필두로 동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제3세계 전역에 걸친 외채위기를 야기하였다.
플라자합의
• 플라자합의는 1985년 9월 선진5개국(미국, 일본, 서독, 이탈리아, 프랑스)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비밀리에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서 합의를 한 것을 말하는데, 합의 내용은 미국의 고금리가 달러강세를 유발했고 그 결과 미국 대 일본, 미국 대 서독의 경상수지가 큰 폭으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었던 바, 이를 시정하기 위해 각국이 협조하여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로 한 것이다. -> 엔고
플라자합의
• 명목환율로 봤을 때 1980년에서 86년 사이에 원화는 달러대비 25%정도의 평가절하가 이루어진데 반해 엔화는 같은 기간 34.5%의 절상이 이루어졌는데, 수출품의 절반 이상에서 일본과 경합 중이었던 한국에게 있어서 이러한 엔고의 상황은 축복에 가까운 것이었다. -> 3저 호황
3저 호황
• 3저(低)는 저달러(엔고), 저금리, 저유가를 말한다.
• 70년대 두 차레의 오일 쇼크를 경험한 이후 80년대 들어 석유 증산이 시작되어 석유가격이 하락하였고,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저달러(엔고)체제가 시작되었다.
3저 호황
• 또한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미국 금리를 낮추는데, 엔고, 마르크고로 인해 일본, 독일이 불황에 들어가 버리게 되면 미국 무역적자 시정도 힘들어지므로 미일, 미독 간의 금리차를 줄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일본과 독일이 불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금리인하를 허용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협조금리인하’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제적 저금리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 저금리와 저유가는 물론 한국에 유리한 조건이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모두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특히 엔고의 의미가 중요했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플라자합의 이후 1986-89년간 한국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은 서서히 한국을 경쟁자로 보기 시작하였고 더구나 냉전이 끝나면서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된다.
•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개방압력이 거세지는데, 80년대 초중반까지는 주로 무역개방 공세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80년대 후반부터는 그동안은 일본에게만 제기되었던 금융에 대한 개방압력까지 가해졌던 것이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1995년 중반 엔저-달러고의 시대가 도래한다.
•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달러저의 상황이 한국의 ‘단군 이래 최대호황’을 가능하게 해 준 조건이었다면, 엔저-달러고의 상황은 동아시아 위기의 국제적 조건이 되었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우선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달러저가 가져온 결과부터 살펴보자.
• 엔고의 상황이 도래하자 일본의 자본은 새로운 자본축적 전략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강력한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즉 일본의 생산자본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진출함으로써, 달러와 연계되어 있는 이 지역 통화의 이점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80년대 후반 9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은 “일본기업들의 해외탈출이라는 하나의 축과 국제경쟁에서의 가격 우위라는 또 다른 축이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달러저의 상황은 무려 10년이나 계속되었다.
• 한 때 달러당 200엔 수준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95년 무렵에는 달러당 80엔의 수준까지 나아갔고, 이러한 달러 초약세의 상황으로 인해 미국에서 달러는 지속적으로 탈출하여 월가의 금융자본에게는 큰 타격을 주었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이때 미국에서 월가 출신의 로버트 루빈(Robert E. Rubin)이 재무장관에 입각하면서 미국의 정책은 강한 달러의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 결국 1995년 4월 25일 G7회담에서 “달러 약세는 비정상적이다. 경제의 펀더멘틀을 반영한 분명한 그리고 질서정연한 반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엔저-달러고의 시대가 시작된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그런데 강한 달러는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을 용이하게 하지만 산업경쟁력이 국제수지에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동시에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하는 한편 일본과의 금리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일본에도 금리 인하를 요청하게 된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등장한 엔저-달러고로의 전환과 일본의 초저금리는 크게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일본의 초저금리 기조는 일본의 금융기관이 동아시아 단기대부를 크게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사실상의 달러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엔저-달러고 상황으로 인해 과대평가되어 이 국가들의 대외경쟁력이 크게 악화되었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배경
• 특히 동아시아에서 과잉차입과 과잉투자 경향이 만연한 가운데 이루어진 엔저-달러고로의 전환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확대에 커다란 장애가 되어 기업도산과 금융부실을 야기하였다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불균형
• 2000년 미국 주식시장 폭락
• 2001년 911테러
• 미국 저금리
• 부시의 이라크전쟁, 아프팍전쟁
• 부시의 FTA, TPP 정책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불균형
• 달러는 2차 대전 이후 반세기 이상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 유럽 국가 간 교역을 제외하면 국제 무역의 대부분은 달러로 결제되고 있으며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 보유고의 70% 이상을 달러로 보유하고 있다.
• 이런 달러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서 세계에 공급되는데, 다른 나라가 달러를 결제 통화와 준비 통화로 받아들이는 한, 미국은 별 부담없이 경상수지 적자를 계속 쌓아갈 수 있다.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불균형
• 미국은 해외에서 수입을 해서 자기가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하고, 그 대가는 자신이 발행한 달러로 지불하면 그만이다.
• 미국이 이처럼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달러가 가진 독특한 지위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불균형
• 기율없는 중앙은행이 돈을 마구 찍어내듯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시키고 있는데도 달러의 지위나 가치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그것은 바로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인 나라들이 다시 미국에 투자를 하고 또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준비 통화를 계속 보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불균형
• 21세기 들어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이 급증하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폭은 더욱 커졌고 아시아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가 외환 보유고로 계속 쌓이고 있다.
• 태평양의 양편에서 벌어지는 이런 글로벌 불균형은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더욱 심화되어 5조 달러 이상의 달러가 동아시아와 중동에 쌓여 있다.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 미국, 유럽, 일본의 양적 완화
• 유럽 재정위기
• 아베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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