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와 대정시대 - National Geographic이 본 한국과 일본의 100년
National Geographic이 본
한국과 일본의 100년
• National Geographic은 현재 전세계 170국에서 23개 언어로 매달 900만부가 팔리는 세계적인 잡지이다.
• 1890년 8월호를 시작으로 National Geographic에 기록된 한국관련 기사는 2005년 현재까지 총 21여 회
• 2001년부터 한국어판 발행
• 일본에 대해서는 1894년 12월호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총60여 회
• 1995년부터 일본어판 발행
• 이후 거의 매달 일본에 관한 기사 수록
National Geographic이 본
1894년의 일본
• 1894년 첫 기사의 저자는 D.W. Stevens로 그는 일본정부에 고용된 외국인
• 그의 시각은 청일, 러일전쟁으로 치닫는 일본의 입장을 여러 나라에 소개하는 역할을 함
1894년 12월호 기사
• 같은 미국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일본의 명치유신은 1853년 페리 제독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 일본의 현명한 세력들은 페리와의 만남을 통해 일본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나를 자각하게 된다.
• 1868년 유신을 달성한 영웅들은 미일조약을 계기로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 명치 신정부가 착수한 것은 정부 기구의 대개혁이었다.
• 필요에 따라 외국인 자문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등, 국제적으로 보아도 어느 선진 여러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조직과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신정부는 자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 신정부는 교육 개혁에 힘을 썼다.
• 전국 방방곡곡에 초등학교가 설치되고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 동경에는 국립대학교가 탄생했다.
• 의료제도의 충실화도 추진되어 의료전문학교가 연이어 개설됨과 동시에 고도의 의료연구를 위한 시설도 만들어졌다.
• 공공사업에도 신정부는 정력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 철도, 항로, 전신전화, 우편사업 등,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한다고 판단한 공공사업에 대해 자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 특히 전화와 우편사업은 당시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 철도는 1873년 노선 총연장이 30km에 지나지 않던 것이 1894년에는 3200km가 된 것을 보더라도 아무리 젊고 급격하게 성장하는 나라의 일이라고 해도 역시 경탄할 실적이긴 하다.
National Geographic이 본1898년 12월의 일본
1898년 12월호
• NG의 회장이자 전화 발명가로 유명한 G.Bell은 1898년 10월에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미국의 저명한 매쉬교수에 의하면 연속된 지형에 포함된 화석을 조사하면 생물진화 과정을 알 수 있다. 어느 지층의 악어의 뇌는 예외 없이 그 한 층 위의 지층의 악어의 뇌보다 작다고 한다. 같은 것이 인간에게도 해당하지 않을까.
• 현대인에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인간의 뇌는 커진다. 매쉬 교수는 다른 연구에서 [일본인의 평균적인 뇌는 서양인의 것보다 크다]고 한다. 나는 이 결론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증명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몸이 작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 일본은 방문해서 느낀 것은 강이 많고 수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 이와 같은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해서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해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전기를 사용해서 자동차를 달리게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증기를 전기로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산설비도 전기를 동력원으로 하면 경비나 효율이 대폭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일본의 과거 25년 동안의 눈부신 발전상을 보면 일본은 혜택 받은 환경을 활용해서 장래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National Geographic이 본1899년 9월의 일본
• O.P. Ostin은 미국재무부 통계국장이다.
• 그는 일본의 싼 인건비가 구미의 기술을 일본이 습득하여 구미와 같은 상품을 만들게 될 경우에 대해 우려하는 기사를 쓴다.
1899년 9월호 기사
•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본이 국제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커다란 가능성을 갖고 있는 나라인 만큼 그 행방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매우 높다.
•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후의 일본의 국제화는 매우 빨랐다. 과거의 여러 일이나 교통의 편리함 등에 의해 미국과의 통상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 1881년에는 일본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미국제품의 비율은 6%에 지나지 않았는데 1898년에는 두 배 이상인 15%까지 증가, 같은 기간 중 일본의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영국제품의 비율은 52%에서 23%로 반감했다.
• 미국은 또한 일본에게 있어서 최대의 수출대상국이다.
• 일본의 대미 수출은 1881년 당시 550만 달러였지만 1898년에는 2356만 달러를 기록. 상품별로 가장 많았던 것이 생사로 1262만 달러, 녹차 328만 달러, 카펫 185만 달러, 쌀 34만 달러, 화학품과 의약품 33만 달러, 비단제품 310만 달러로 되어 있다.
• 기타 일본의 조리나 게타, 죽세공, 칠기 등도 미국인에게 신기함이 있어 나름대로 팔렸다.
• 미국의 일본 수출에서 최대 품목은 면화로 1890년에는 불과 8만 5천 달러였던 것이 1899년에는 577만 5천 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대일본 수출 총액은 1881년 89만 달러였던 것이 1989년에는 무려 2000만 달러까지 급속도로 팽창했다.
• 일본제품의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의외로 강해서 한때 일본위협론이 진지하게 논의 되었다.
• 당시의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일본의 노동 비용은 기술력에 비해 매우 낮았다. 따라서 일본이 기술을 습득하여 유사한 제품을 저가로 공급하게 되면 선진국들은 풍비박산 나게 될 것이다.
• 당시 화제가 된 것은 스위스제 시계였다. 스위스의 시계는 디자인, 정확성으로 유명했는데 일본이 기술력과 압도적인 저임금을 무기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던 것이다. 그만큼 일본의 공업력에 대한 세계의 경계심은 강했다.
National Geographic이 본
1901년 2월의 일본
• 미 해군 중령인 Harrie Webster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기사를 쓴다.
• 1901년에 쓴 기사에서 중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문화나 일본인의 국민성을 분석하고 있다.
• 중국인과 일본인은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으며 인종도 민족도 다른 양자의 단순 비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 일본인은 역사적으로 보아 가장 진보적인 국민이다.
• 이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상대대로부터 내려온 자발성이며 어떠한 외부로부터의 압력에도 명치유신 정부는 굴하지 않았다.
• 그 변혁(명치유신)은 통치하는 쪽과 당하는 자가 마음을 모아 기대한 대로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스스로의 정치체제를 변혁하여 새로운 시대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힘에는 감명을 받게 된다
• 이와 같은 시도가 성공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여기서는 문제삼지 않겠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목표로 하는 방향을 보면 이 나라가 지금 근대국가의 첨단을 걷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 한편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넘어서려고 하는 관심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 거대한 다리, 성문, 운하 등과 같은 역사적 유산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 견줄만한 것이 없고 나아가 세계 최고(最古)의 학술문헌, 문학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중국은 과거의 나라가 되고 있다.
• 그들의 꿈은 흐릿한 빛으로 퇴색되고 과거의 유산을 지키고만 있으며 새로운 창조에 대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 일반론을 벗어나 중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 있다.
•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살 쪄있어서 위세가 등등하며 거만한 행동으로 자신의 재력을 보여주려는 점이 있다. 사치스러운 식사를 게다가 많이 먹는다.
• 부나 지위는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알 수 있으며 인생의 즐거움을 알고 즐길 줄 아는 것이 중국인이다.
• 한편 일본인은 부자도 가난한 자도 검소하게 살며 간결한 식사를 하고 폭음폭식을 하는 경우는 없다.
• 사치와는 거리가 먼 간소한 삶을 추구하고 그것이 군주로부터 일반국민에게까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 따라서 일본인은 살찐 남자도 여자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1905년 9월호 Webster의 글
1905년 5월호가 본
일본
• M. Smith는 미국 어업국 차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어업이 활발한 나라 일본을 방문하고 서구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산물 요리법과 이용법을 알고 놀란다.
• 또한 서구로부터 적극적으로 양식기술을 배우는 일본인의 적극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는다.
• 일본은 20세기에 들어 세계 유수의 해군국으로 부상했는데 그 배경에는 예로부터 해양국으로서의 전통이 있었다. 일본의 어업은 산업으로서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 일본의 어부들은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사회적인 영향력도 강해서 현재와 같이 일본이 국가로서 곤란한 상태에 직면해 있는 경우는 그들의 존재 의의는 크다.
• 일본의 어업산업의 특징은 해산물의 이용 범위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이용법이나 요리법을 일본인은 알고 있다. 이는 일본인이 음식에 관해서 거의 금기가 없다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 일본 정부도 어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명치 신정부는 어업육성에 힘을 쏟아 왔다. 정부 내부에는 어업전문 기구가 있어서 어업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일본 전국에서 모여있다. 또한 외국의 발달된 어업기술을 도입하려고 적극적으로 어업선진국에 유학생을 보내고 있다.
어망을 걷고 있는 어부들. 명치시대 일본의 어업종사자의 수는 약 300만 명. 인구의 16분의 1에 달했다고 한다.
바다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일본에서는 여성이나 어린이들은 귀중한 노동력이었다. 아래 그림은 해녀들.
다시마를 가공하는 여성과 어린이들
•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일본인의 수는 300만 명으로 미국의 21만 5000명을 휠씬 상회하고 있다. 수산업 전체의 매상고는 년간 약 3000만 달러로 미국이나 영국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어획양은 일본이 연간 약 300만 톤 정도로 영국의 두배이다.
• 서구인들에게는 기묘하다고 생각되는 해산물도 있다. 동경의 가계에서 발견한 복어를 말려서 만든 등불도 그 한 예이다. 고둥의 알 주머니를 건조시킨 ウミホオズキ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축제 때 가판대에서 팔고 있으며 여자아이가 입으로 기묘하게 부풀리거나 터트리거나 하며 소리를 내며 노는 것이다.
• 양식도 발달하여 뱀장어, 잉어, 금붕어, 연어, 송어 등이 있다.
• 연어의 인공부화는 북해도 등 일본의 북부지방이 중심이다. 이들 지방의 하천의 수량이 감소하기 시작해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이를 위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정부가 지휘권을 쥐고 서구의 연어인공부화 선진국에 유학생을 파견했다.
• 유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그 성과를 공책에 적어 귀국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르친 쪽은 별로 신경을 안 쓴 것 같은데 절대 가르치지 말았어야 할 고도의 기술도 포함되었던 것 같다.
• 드디어 북해도에 아시아 최초의 본격적인 연어 부화장이 완성되었는데 그 기초가 되는 중요한 기술은 유학생들이 선진국에서 고생하며 습득한 것이었다.
• 특이한 것은 금붕어 양식이다. 금붕어는 일본인의 독특한 미의식과 관련이 있다.
• 금붕어는 감상용으로만 기르는 것인데 과거 일본이 대기근을 겪을 때에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금붕어 만을 소중히 길렀다는 것이다. 쉽게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진언종의 성지 고야산, 일본 불교의 마음을 보다
• 역사가 긴 일본에서 특히 오랜 전통을 지랑하는 진언종(眞言宗)의 영지(靈地)인 고야산(高野山)
• 홍법대사로도 유명한 쿠우카이(空海:773~835)가 열은 이 성지를 방문한 엘라이저 시드모어는 엄숙한 공기와 고승의 박력에 압도당한다.
•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에서 일본인의 마음을 알게된다.
1907년 10월 호 기사
• 고야산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방대한 수에 이르는 묘나 비석일 것이다. 역대 천황과 관련이 있는 귀족들이나 성인들의 묘비와 함께 다이묘나 가인, 가부키 연기자, 나아가 명치유신에 공적이 있는 영웅이나 실업가 들의 묘비도 보인다.
• 쿠우카이의 묘는 고야산에서 가장 성스러운 오쿠노인에 있다.
• 여기에 가려면 가마를 타지 않고 스스로의 발로 가야 한다.
• 가장 험한 곳은 오쿠노인의 산길에 걸려있는 3개의 다리이다.
• 마음에 껄끄러운 것이 있는 사람은 홍법대사의 가르침을 배반한 것으로 간주되어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전설이 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 고야산을 방문했을 때 만일 다리를 건너지를 못하면 군중들 앞에서 치욕을 당할지 몰라 전날 밤 승려를 몰래 불러 캄캄한 밤에 다리를 건너보았다고 한다.
•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가 있다.
• 어느 날 아침, 필자는 고야산의 어느 승려를 알현할 수 있었다.
•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은 그 승려가 조용히 금강봉사의 한 방에 들어오자마자 너무도 신성한 모습에 우리들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와 다다미에 볼을 비비듯 넙죽 엎드려버렸다.
• 오랜 동안 엄격한 수행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 발하는 설명할 수 없는 박력에 단지 우리는 압도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 그러는 동안 식사가 나왔다. 칠그릇에 너무도 일본답게 섬세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 식사 도중에 고승은 우리에게 엄격했던 수행시절 이야기, 어떻게 홍법대사의 후계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해 주었다.
1911년 11월호가 본
일본
간결한 생활이야 말로 일본인의 생활의 원점
• 글 및 사진 : William W. Chapin
• 일본인 만큼 행복해 보이며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국민은 없다.
• 전에 중국대륙이나 조선반도를 돌아다니며 수 많은 사진을 찍은 필자는 그 이유를 자연을 사랑하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마음에서 찾았다.
• 다음 기사는 인력거와 가마를 타고 일본 전국을 돈 기록이다.
1911년 11월호 기사
• 일본에서 보낸 나날을 회상하는 것은 실로 즐거운 일이다. 추억이 멋진 하모니를 연주해 주는 것 같다. 그리운 얼굴, 고운 옷, 아름다운 꽃, 게다가 신사와 절, 집들과 훌륭한 정원…. 모든 것이 각각의 역할을 알고 하모니를 연주하고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와 같이.
• 9 개월에 걸친 일본 체재는 마치 즐거운 피크닉 같아서 우리들은 인력거를 타거나 가마에 흔들리고 난 후 도시락을 먹는 식으로 많은 시간을 야외에서 보냈다.
• 일본인은 감탄할 정도로 outdoor life를 즐기고 축제를 생활 속에 정착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꽃이다.
• 매화, 벚꽃, 목련, 철쭉, 수선화, 국화….계절에 상관 없이 일본인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즐거웠던 것은 얼마든지 있다.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은 동경에서의 벚꽃놀이였다.
• 우리들이 방문한 것은 동경 중심에서 수 킬로 떨어진 스미다 강변의 명소이다.
• 강변 뚝방길 양쪽을 지금이 절정이라고 말하듯 벚꽃이 수 킬로나 계속되고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벚꽃 아래를 많은 사람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벚꽃을 감상하며 쉴 새 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 쿄토에서 기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행운이라고 할까, 어느 신부를 만났다.
• 그녀는 화려한 의상을 5겹이나 입고 있었다. 무거울 텐데 왜 그렇게 옷을 겹쳐 입고 있는 것일까? 5월이라고 해도 아직 춥기 때문이냐고 물으니, 들고 가는 것이 귀찮아서 입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 어린 아이들은 특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카메라를 든 미국인은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약국 앞.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도 생물을
피하고 뜨거운 차를 내준다
• 우리들 외국인의 입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코네의 미야시타라고 하는 온천 여행이었다.
• 하코네의 산 중턱에서 보면 수 없이 많은 계곡을 볼 수 있으며 마음이 깨끗이 씻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온천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숙박을 한다면 후지야호텔을 권하고 싶다.
후지야 호텔(1891년)
1936년
1906년
• 이곳은 역사도 깊고 요리나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이 호텔을 추천하고 싶은 것은 방마다 온천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 쿄토는 1100년 동안 일본의 수도로 군림한 역사가 있는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도시다.
• 무려 900여개에 달하는 신사불각이 있으며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선물가게가 무수히 있다.
• 쿄토는 기본적으로는 불교의 마을이다. 쿄토의 인구는 45만인데 여기에는 세계의 개신교 선교사의 3배에 달하는 수의 승려가 있다.
• 일본의 어린이들은 미국의 어린이들과는 달리 아직 어린데도 집안 일을 잘 돕는다. 4~6살이 되면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것은 그들의 몫이 된다. 늘 일심동체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술래잡기를 해도, 소꼽장난을 해도 늘 그들의 등에는 동생들이 엎혀있다.
• 아기를 업은 여자아이들은 모두 밝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자아이들이 모여 재잘거리거나 큼 소리로 웃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 5월5일에 남자아이의 성장을 기원하는 행사가 있다. 이때는 종이나 천으로 만든 잉어를 매단다.
• 일본에 대해서는 많은 외국인이 여러 감상을 쓴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모두가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 즉, 일본인만큼 행복하고 하루하루의 생활에 만족하며 생활하는 국민은 없다는 점이다.
• 그 이유는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 하나는 일본인의 간소한 생활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나와도 실천하지는 않는다.
• 또 하나는 일본인의 친절함이 증명하는 것 처럼 아름다운 것에 대한 솔직한 감동과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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