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론(nylon)의 아버지 Wallace Hume Carothers월리스 캐러더스
Wallace Hume Carothers는 1896.4.27~1937년 41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학자입니다.
그는 나일론을 발명한 미국의 유기화학자로 1928년 듀폰사의 중앙연구소 유기화학부장으로 초빙되었으며 평생 고분자화학 기초를 연구하였습니다
캐러더스는 1896년 4월 27일, 미국 아이오와주 버링톤에서 4명의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고 가정 형편도 어려웠기 때문에 공부에 큰 뜻을 두지 않았다.
캐러더스는 1913년에 아버지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캐피탈 대학의 상과에 입학하였다.(만 17세)
그 대학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문대학에 해당하는데 캐러더스는 부기를 배우면서 그 원리를 꼼꼼히 따지는 학생으로 정평이 났고,
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점차적으로 물질 현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빠져 들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캐피탈 대학의 부학장으로 승진하면서 캐러더스의 가정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때 캐러더스를 눈여겨보고 있던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의 화학자 스타인(Charles M. A. Stine)이 그를 신물질 개발 연구원으로 초빙하려고 애썼다.
그는 듀폰에서 돈이 되는 연구를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순수과학을 연구함으로써 장기적인 기업의 이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출퇴근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고 연구 주제도 제한을 두지 않으며, 연구비도 거의 제한이 없다는 조건을 확인하고 난 후 캐러더스는 교수에서
듀폰사 연구원으로 이직을 결행하게 된다.
듀폰그룹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혁명 때 미국에 망명한 E.I.뒤퐁 드 느무르(E.I.du Pont de Nemours:1771∼1834)가 1802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창립한 화학공장이 기원이다.
대영전쟁과 남북전쟁을 거쳐 19세기 말에는 미국의 대화약회사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국이 사용한 탄약의 40%를 공급하였다. 1930년대에는 영국의 ICI와 독일의 이게파르벤과 함께 세계 3대 화학기업의 하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원자폭탄을, 대전 후 1950년부터는 수소폭탄을 제조하였다.
화학섬유·염료·합성고무·필름·플라스틱 등도 제조하고 있는데, 나일론·올론 등의 개발은 유명하다.
그외 의류·생활용품·건축·전자·수송·농업·식품·영양 및 보건 등 1,8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용 소재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당시 듀폰 사에서 일하던 유기화학자 찰스 스타인(Charles M. A. Stine)은 유망한 젊은 과학자들을 영입해 기초 과학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실리 추구와 이미지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국 측이 사용한 폭약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공급한 결과, 듀폰은 막대한 이익과 함께
‘죽음의 상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기 때문이다.
듀폰은 이후 생활용품 사업 쪽에 주력하며 자선사업을 크게 펼치기도 했지만, 당시의 여러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다.
당시의 미국에서는 화학 회사뿐 아니라 화학자도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약품이나 원료는 국내 개발보다 해외 수입이 더 간단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과 아시아로부터의 약품과 원료 공급이 끊어지기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캐러더스가 비록 유능한 화학자이긴 했지만, 듀폰에서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는 점이다. 대신 훗날의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플로리(Paul J. Flory)를 비롯한 여러 조수들이 그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에 몰두했다.
당시 캐러더스는 실험실보다도 오히려 도서관에서 과학 관련 문헌을 읽고 아이디어를 필기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실험의 95%는 연필과 종이로 증명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해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사실 캐러더스는 애초부터 뭔가를 발명할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순수한 학문적 관심을 추구하다 보니 우연히 여러 가지 획기적인 발견을 하게 된 것이고, 그 발견이 때마침 듀폰이라는 대기업의 사업 추구 방향과 맞아 떨어져서 히트 제품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1929년에 캐러더스는 알코올과 산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에스테르(ester)라는 화합물을 연결하여 폴리에스테르(polyester)를 최초로 개발했다.
1930년 4월, 캐러더스의 연구팀 소속인 아널드 콜린스(Arnold M. Collins)가 최초의 고품질 합성 고무인 네오프렌(Neoprene)을 발명했고,
역시 같은 팀의 줄리언 힐(Julian Hill)이 폴리에스테르로부터 긴 실을 뽑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 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하지만 새로운 합성 섬유는 열이나 물에 잘 녹는 성질이어서 실용성이 없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산과 아민(amine)을 결합한 아미드(amide) 화합물에서, 앞서와 비슷하지만 열이나 물을 더 잘 견디는 합성 섬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캐러더스는 이 합성 섬유를 더 이상 연구하지 않고 잠시 옆으로 밀어두었다. 이후의 외적 압력이 없었더라면, 실용적 발명보다는 순수 과학 쪽을 더 우선시했던 이 과학자는 어쩌면 한참 더 그런 상태로 버티지 않았을까. 합성 섬유의 개발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 된 외적 압력이란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이었다.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익성 악화로 불안해하던 듀폰은 캐러더스의 연구팀에게 역시 앞으로는 ‘돈 되는 연구’를 하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해 왔다. 중압감으로 인해 캐러더스는 우울증이 예전보다도 더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대공황 [大恐慌, Great Depression]
1929년에 시작된 사상 최대의 공황.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한 데서 발단된 공황(가장 전형적인 세계공황)으로서 1933년 말까지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여기에 말려들었으며, 여파는 1939년까지 이어졌다. 이 공황은 파급범위 ·지속기간 ·격심한 점 등에서 그 때까지의 어떤 공황보다도 두드러진 것으로 대공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배후에는 만성적 과잉생산과 실업자들이 끊임없이 계속 유지되고 나아지질 않고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10월의 주가 대폭락은 경제적 연쇄를 통하여 각 부문에 급속도로 파급되어, 제반 물가의 폭락, 생산의 축소, 경제활동의 마비상태를 야기시켰다.
기업도산이 속출하여 실업자가 늘어나, 33년에는 그 수가 전 근로자의 약 30 %에 해당하는 1,500만 명 이상에 달하였다.
1934년 5월 24일, 캐러더스의 연구팀 소속인 도널드 코프먼(Donald D. Coffman)이 최초의 폴리아미드(polyamide) 섬유 합성에 성공했다. 마침내 1935년 2월 28일, 석탄(나중에는 석유)의 부산물인 벤젠이라는 값싼 물질을 원료로 한 초중합체가 완성된다. 처음에는 6-6이라는 암호명으로 지칭되던 그 물질로부터 천연 섬유보다도 더 튼튼하고 탄력이 있으며 색깔이 고운 섬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듀폰에서는 훗날 이 물질을 상품화하면서 ‘나일론’이라는 신조어를 상표명으로 붙였다.
1937년 4월 29일에 캐러더스의 죽음
나일론 6-6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지 3주일 지났을 때였고, 캐러더스의 42번째 생일 이틀 전이었다.
1938년 나일론 생산에 성공
** 뉴욕 만국박람회
1939∼1940년에 걸쳐 ‘내일의 세계’라는 테마를 내걸고 개최된 국제박람회. 조지 워싱턴 대통령취임 1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 텔레비전 ·테이프 리코더 등
당시의 최첨단기술이 낳은 제품들이 전시되는가 하면 플라스틱 ·나일론 등이 선을 보여 커다란 반응을 얻었다.
이 박람회에는 외국으로부터의 참가도 63개국에 달하여 성황을 이루었으나 해를 넘긴 1940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박람회에서 철수하는 나라가 많았다.
개회기간 348일, 입장자 수가 7000만 명을 돌파하여 사상 최고로 기록되었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과 타이어, 밧줄과 텐트 등의 군수품 제조에도 사용되는 바람에, 스타킹을 비롯한 기타 제품의 생산이 잠시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떤 여성들은 낙하산 제조에 이용해 달라며 각자의 스타킹을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1939년 9월 1일에 일어난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에서 발발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종결된 것으로 여긴다.
최초 시판일에는 백화점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수십만 개가 금세 동이 나는가 하면, 간신히 스타킹을 구입한 여성들이 기뻐하며 즉석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신어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과 타이어, 밧줄과 텐트 등의 군수품 제조에도 사용되는 바람에, 스타킹을 비롯한 기타 제품의 생산이 잠시 중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어떤 여성들은 낙하산 제조에 이용해 달라며 각자의 스타킹을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흔히 1939년 9월 1일에 일어난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에서 발발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종결된 것으로 여긴다.
최초 시판일에는 백화점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수십만 개가 금세 동이 나는가 하면, 간신히 스타킹을 구입한 여성들이 기뻐하며 즉석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신어 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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