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브레이크 비트와 하드코어 사운드의 결합 PRODIGY
초강력 하드코어 사운드의 결합
PRODIGY
artist PRODIGY
title <The Fat of the Land> 1997, XL Records.
members SOUNDMAKER : LIAM HOWLETT
DANCER & VOCAL : KIETH FLINT
DANCER : LEEROY THONHILL
MC : MAXIM REALITY
테크노, 전세계 씬을 장악하다
대부분 테크노하면 지겹게 되풀이되는 비트만을 떠올리고 진저리치고 만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PRODIGY라는 팀을 놓고 봤을 때 그러한 고정 관념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지금 세계는 테크노가 지배한다. U2와 THE SMASHING PUMPKINS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직시하라. 이들은 테크노가 지배하는 전세계씬에 대한 실증적 증거이다.
커트의 자살 이후 락씬에서는 펑크, 브릿팝 등이 부침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확실한 Next big thing이 되지 못했다. 단발성 인기로 끝나거나, 지역적인 패권만을 얻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중 후반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다시금 거침없는 흥분에 빠져든다. 자, 열광적 브레이크 비트와 과격하고 공격적인 사운드로 무장한 새로운 강자가 출현했다. 바로 PRODIGY다. 물론 테크노에도 THE HEMICAL BROTHERS 등 이름값이 만만찮은 팀들이 많지만 이번 회에 소개되는 PRODIGY만큼 거대한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는 없다. PRODIGY는 <The Fat Of The Land>앨범을 통해 전세계에 이미 테크노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당당히 선언하고 만 것이다. 이들의 세 번째 앨범 <The Fat Of The Land>는 전세계 동시 발매와 23개국에서(미국 포함)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로의 직행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또 <The Fat Of The Land>는 지금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나간 앨범으로 기록되기도 하는데, 발매 첫주 7일 동안 무려 300만장이 전세계에서 팔려나갔던 것이다.
테크노의 발전과 PRODIGY의 출현
테크노 음악의 정통적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많으나, 대체로 KRAFTWERK, CAN 등 1970년대 독일 크라우트 록을 중요한 기점으로 본다. 이후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이후 다양하게 분화, 또는 진화해 가면서 서서히 씬을 장악해 갈 힘을 담금질하게 되는데, 1990년대 바로 PRODIGY나 CHEMICAL BROTHERS, UNDERWORLD 등 브리티쉬 씬의 천재적인 팀들의 출현과 함께 일렉트로니카의 전성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PRODIGY의 사운드는 정통(?) 테크노의 그것과는 매우 상이하다. 게다가 PRODIGY는 그들의 출발점인 Acid-House(Rave)도 진작에 뛰어넘고 있다. 어쩌면 가장 극적인 형태의 변종이랄 수도 있겠다. 공격성, 파괴력, 역동성, 거침, 이 모두 PRODIGY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이다. 이들은 과감히 락의 언어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그들 고유의 색깔로 변모시켜 전혀 새로운 하드코어 테크노를 탄생시키고 말았다.
PRODIGY가 위대한 점은 또 다른 면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대개 일반적인 뮤지션들이 앨범을 발표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양순해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앨범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격렬하고 과격하게 변해간다는 것이다. 첫 앨범 <The Prodigy Experience>에서 <Music For The Jilted Generation>, <The Fat Of The Land>에 이르기까지 PRODIGY 사운드의 변화는 유연한 곡선이 아닌 가파른 직선을 그리고 있다.
PRODIGY의 결성
PRODIGY사운드의 실질적인 주인 RIAM HOWLETT은 1974년 영국 Essex의 Braintree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 아래서 8년간 '혹독한' 클래식 피아노 수업을 받았는데, PRODIGY의 레코드에서 간혹 들을 수 있는 기막힌 Keyboard 플레이는 바로 그 영향이다. 중학교 때 RIAM HOWLETT은 Hip-Hop에 빠져들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싸구려 턴테이블 두 개를 구입한 그는 스스로의 악곡을 만들기 시작하고, 로컬 Hip-Hop 팀인 CUT TO KILL에서 Second DJ로 발탁된다. CUT TO KILL이 TAM TAM RECORD와 계약할 때, RIAM HOWLETT은 백인이라서 어울리지 않는다며 소외되고 만다. CUT TO KILL이 레코드 계약을 따내기 위해 RIAM의 곡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1988년의 일이다. 당시 영국은 Acid-House의 거센 물결 속에 있었다. Acid-House는 본래 미국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대서양을 건너자 Rave라고 하는 중요한 트랜드를 만들어 냈다. Rayne의 Barn에서 열리는 Rave 파티에 간 RIAM은 곧 자신을 배신한 Hip-Hop을 버리고 Rave에 빠져든다. 몇 달 후 RIAM은 Rave 파티에서 DJ-ing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Essex 씬에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한 편 LEEROY THONHILL과 KEITH FLINT는 모두 춤을 목숨처럼 좋아하던 인물들로, Rave에 빠져들고 나서는 매일밤 파티에 가 춤을 췄고 거기서 인기있는 인물들이 되었다. 야외 Rave장에서 KEITH는 처음 RIAM을 알게 된다. KEITH는 RIAM의 플레이에 강한 인상을 받고, RIAM이 직접 Mix한 테입을 부탁한다. RIAM이 가져온 물건에 큰 충격을 받게 된 KEITH와 LEEROY는 RIAM이 직접 만든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고 싶다고 제안하고, SHARKY라는 여성을 포함한 초창기 라인업으로 PRODIGY는 출발하였다. PRODIGY라는 이름은 RIAM HOWLETT이 처음 구입했던 신디사이저 'MOOG PRODIGY'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MC의 필요성을 느낀 RIAM은 레게 MC로 활동하고 있던 MAXIM REALITY(사악한 콘텍트렌즈의 그 사내)를 끌어 들인다. 처음에는 단 9명(그것도 스탭 5명을 포함해서) 앞에서 공연을 했던 적도 있지만, Raindance에서 12번째 공연을 할 무렵 관객은 12,000명으로 불어 있었다. 당시 다른 동료 팀들과는 달리 PRODIGY는 DAT에 의존하지 않고 라이브를 한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1990년 크리스마스에, RIAM은 몇주전 XL레코드와 비밀리에 계약을 체결했음을 맴버들에게 알린다. 이때 Sharky는 팀을 떠나고 비로소 현재의 PRODIGY 라인업이 갖추어진다.
MODERN-TIME BEETHOVEN
XL과의 계약 후 PRODIGY는 EP <What Evil Lurks>를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첫 싱글 <Charly>를 놓는다. 그때부터 PRODIGY는 비로소 대중의 주목을 끌며 UK 차트에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한다. <Charly>는 UK 차트에서 최고 3위를 기록했다. 연이어 발매된 싱글 <Everybody In The Place>, <Fire>에 이어 드디어 PRODIGY 최초의 정규 LP가 발매된다. 그것이 바로 <The Prodigy Experience>다. 이 레코드는 Rave씬에서 탄생한 최고의 앨범이라는 평을 들었다. <The Prodigy Experience>는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6달 동안 UK 앨범 차트 Top 40에 머물렀다.
그러나 첫 앨범의 대단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PRODIGY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운 국면이 도래한다. 먼저 <Charly>의 성공은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변절로 받아들여졌고 'Charly는 Rave를 죽이려 하는가' 하는 자극적인 제하의 기사가 잡지에 실렸다. DJ들은 좀처럼 PRODIGY를 틀지 않으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무렵 Rave는 뚜렷한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PRODIGY가 그들의 출발점인 Rave에만 목숨줄을 건다면 자칫 동반 퇴출되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RIAM은 PRODIGY의 진화를 모색했다, 그것도 혁명적인. RIAM은 NIRVANA, THE SMASHING PUMPKINS, THE RED HOT CHILI PEPPERS를 들었고, RAGE AGAINST THE MACHINE과 BIOHAZARD의 라이브를 연구했다. 즉 RIAM은 ROCK과의 조우를 통해 PRODIGY 사운드의 활로를 모색한 것이다. 이로서 PRODIGY에게는 전혀 새롭고 광대한 미지의 세계가 펼쳐졌다.
PRODIGY가 이러한 중요한 전환점에 발표한 싱글은 <One Love>와 NO good (start the dance)>였다. 대중의 전폭적인 호응에 고무된 RIAM은 더욱 더 새 앨범 제작에 자신감을 갖고 임할 수 있었고, 1994년 <Music For The Jilted Generation>이라는 타이틀의 두 번째 앨범이 드디어 발매된다. 이 앨범은 발매하자마자 UK 앨범차트 1위로 직행했고, 전세계적으로 백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Voodoo People>과 <Poison>을 포함하여 4곡의 싱글은 모두 top 15에 랭크되었다. 전폭적인 호응은 대중의 것만이 아니었다. NME는 RIAM을 '현대의 베토벤(modern-time Beethoven)'이라고 칭했다. 정력적인 공연은 계속되었고, PRODIGY는 성공의 단꿈에 젖은 듯 보였다.
<The Fat Of The Land>
그러나 이 정도의 성공을 거머쥐었다고 해서 만족할 PRODIGY는 아니었다. 1996년 5월 PRODIGY는 새 앨범의 성격을 완벽히 예고해 주는 새로운 싱글 <Firestarter>를 시장에 풀어놓는데, 이 싱글은 그해의 싱글로 선정되었고 팬들의 전격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Firestarter>는 PRODIGY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싱글인데, 먼저 그동안 댄서로만 활동했던 KEITH가 보컬의 영역으로 진출한 첫 번째 싱글이었다. KEITH의 사이코틱하면서도 메마른 보컬은 강력해진 PRODIGY의 하드코어 사운드에 잘 어울렸다. 또, 그동안 Rock과의 연대를 구상해 온 RIAM의 시도가 장르간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충격적 물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RIAM은 PRODIGY의 새로운 접근이 대중에게도 먹혀든다는 점을 확인하고 더욱 자신감을 갖고 새 앨범 제작에 임할 수 있었다. <Firestarter>는 순위가 급격히 변동하기로 유명한 UK 차트에서 1위로 등장 3주간 그 자리를 지키는 괄목할 성과를 거둔다. (UK 챠트는 소매점에서 바코드로 집계되기 때문에 순위 변동이 매우
급격하기로 유명하다.)
이어 PRODIGY는 150만장이 넘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게 된 슈퍼 싱글 <Breathe>가 발매된다. <Firestarter>에 이어 <Breathe>는 9개국에서 No.1을 점령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 시점에서 일렉트로니카의 세계 점령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는데, 브리티쉬 사운드에 전통적으로 배타적인 미국조차 PRODIGY의 이 두 싱글에는 완벽히 무장 해제되고 만 것이다. PRODIGY는 드디어 제 3집 앨범 <The Fat of the Land>을 발매한다. <The Fat of the Land>라는 앨범명은, 그들의 출신지인 Essex가 댄스씬보다는 농업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빗댄 것이다.
앨범을 플레이어에 올려 놓으면 경쾌한 전자음이 울리고, 속도감 넘치는 비트가 거침없이 흐르기 시작한다. 앨범 내에서 손꼽히는 헤비 넘버 <Smack my bitch up>이 시작된 것이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예사롭지 않다. <The fat of the land>에서 PRODIGY의 특징적인 사운드는 한마디로 무거운 베이스 사운드가 곡의 바탕을 꽉 채우면서 그 위로 자유자재의 리듬과 브레이크 비트가 고공 비행한다는 것인데, 벌써 그 점은 첫 곡에서부터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테크노에서 헤드벵잉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야말로 실증적으로 증명해 주는 곡이다. 중동풍 여성 보컬이 샘플링되어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양념이 되고 있다. <Smack my bitch up>의 비디오 클립은 그 하드코어의 수위가 실로 가볍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동성연애와 노골적인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첫 곡의 흥분을 그대로 이어주는 두 번째 곡은 슈퍼 메가톤급 싱글 <Breathe>다. (단일 싱글이 150만장이나 팔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앨범 발매 전 라이브 트랙들과 결부된 싱글로 발매되어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바로 그 곡이다. 이 곡이 발매되자 이제는 락팬들도 더이상 PRODIGY를 단순한 댄스 그룹으로 치부하지 않게 되었다. <Breathe>는 챙챙거리는 칼소리 등 맛깔스럽게 샘플링을 사용하고 있는데, RIAM의 믹싱 능력이 크게 돋보인다.
마구 환각 상태를 만들어 내던 빠른 비트의 두 곡이 끝나면 무겁고 둔탁한 <Diesel Power>가 시작된다. 지겹게 반복되는 빠른 비트만으로 채워진 앨범이 아니라는 점은 <The Fat Of The Land>의 강점이다. 앨범 내 곡의 배열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이런 경우 더욱 실감하게 된다. DR. Octagon의 Kool Kieth가 직접 라임을 쓰고 랩까지 해준 곡인데, 힙합 비트가 무겁게 곡을 채워준다. 앨범 내에서 블랙 컬러가 단연 두드러지는 곡이다. 음악적으로 퓨전적 성격이 강하지만 맴버 구성 측면에서도 흑백이 공존한다는 점은 미국내 PRODIGY 성공의 한 가지 인자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어지는 넘버는 <Funky Shit>. <Breathe>의 광적인 흥분을 재현하는 완벽한 테크노 넘버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들을 때면 앨범 표지 게 사진이 떠오르는데, 화가 나서 그 촘촘한 걸음으로 순식간에 덥쳐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앨범 표지 사진 또한 걸작이 아닌가? ) 'Oh my god that's a funky shit'이라는 보컬은 BEASTIE BOYS의 <2 3 Break>에서 샘플링되었다. 뭔가 쫓기는 듯한 사이코틱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브레이크 부분에서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Serial Thrilla>에서는 <Firestarter>를 통해 자신감을 갖고 전면에 나선 KEITH의 보컬을 감상할 수 있다. PRODIGY의 하드코어 테크노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이곡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승전결이 또렷하며 악곡 자체는 락앤롤의 전형적인 형식을 빌고 있으면서도, 능수능란하게 테크노 비트를 결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참신한 곡을 탄생시키고 있다. (브레이크에서의 RIAM의 믹싱 능력이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Serial Thrilla>의 파괴적이고 극렬한 흥분 상태가 지나고 나면 가벼운 터치로 시작되는 <Mindfields>가 이어지는데, 이 두 곡의 이음새 또한 걸작이다. 크게 다른 곡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단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정밀하게 제조되어 있다. MC MAXIM가 보컬을 맡고 있다. 펑키한 리듬은 일품이며, 긴장 속에서도 아기자기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Narayan>은 화제의 곡인데, KULA SHAKER의 Crispian Mills가 참여한 트랙이기 때문. 대개 다른 뮤지션이 참여하여 만들 경우 이도 저도 아닌 후진 곡이 되기 일쑤인데, 역시 PRODIGY는 다르다. <The Fat Of The Land> 앨범의 분위기를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도 Crispian Mills의 색깔 또한 놓치지 않았다. 9분이 넘는 곡이지만 길다는 생각이 들 틈조차 없이 꽉 찬 느낌을 준다. 이 곡의 키보드 플레이를 들으면 확실히 이들도 유러피언 댄스의 후손이라는 생각이 든다. Crispian Mills의 아이디어인 듯 힌두어 주문이 삽입되어 있다. 채찍질 소리를 연상케 하는 후반부의 이펙트도 극도로 남성적이라는 레코드의 인상에 한몫을 하고 있다.
<Firestarter>는 커버곡 <Fuel My Fire>를 제외하고는 가장 나이가 많은 곡이다. <firestarter>의 발매와 성공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된 대로이다. 샘플링된 기타음은 <Firestarter>의 상징. 연이어 터져 나오는 거침없는 비트와 신경질적으로 뒤틀린 KEITH의 보컬은 더할 나위 없이 쿨(Cool)하다. 단순한 구성인 것 같지만, 세상 어디에도 이런 사운드를 낼 팀은 없다. (있다면 심각한 표절이다.) 9번째 트랙은 <Climbatize>. 뭔가 앨범을 마무리해가는 느낌. 보컬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트랙이다. 마지막 곡 <Fuel My Fire>는 L7의 커버로서, REPUBLICA의 SAFFRON이 보컬을 제공하고 있다. 락 넘버를 PRODIGY 식으로 새롭게 리메이크하고 있는데, 결국 마지막 곡을 <Climbatize>로 설정함으로써 RIAM은 <The Fat Of The Land> 앨범을 통해 시도했던 ROCK과의 조우가 성공적이었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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