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약 중간 시대
신,구약 중간시대
구약성서시대
창세기
홍수이전(~B.C.2400), 홍수~아브라함(B.C.2400~B.C.2000), 족장시대
이집트거주(B.C.1800-1400)
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신명기,여호수아
사사시대 (사사기)
왕국시대 (사무엘,열왕기,역대)
분열왕국시대
남 유다, 북이스라엘, 이스라엘 재건
신,구약 중간시대
신,구약 중간시대 (암흑시대)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간의 침묵기
200년간 포로 귀환의 역사속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그 이후 침묵하심
공인된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에 침묵기라 불림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70식구 이야기 이후 모세가
등장하기까지 400간 침묵한 것과 유사
바벨론의 예루살렘파괴 (B.C.586)
국가의 사라짐을 의미
팔레스타인의 패권 변화
바벨론 (70년)
바사 (200년)
헬라 그리스의 알렉산더 (30년)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 (100년)
앗수르의 바벨론 통치자 셀레우코스왕조 (34년)
유다의 독립 (100년)
로마의점령 (B.C. 63년)
예수탄생 (B.C. 4년)
재건시대
에스라서
1, 2차 귀환 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
느헤미야
3차 귀환 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
1차 귀환: B.C. 537년
스룹 바벨 인도-성전 재건 (B.C.516): 학개,스가랴
2차 귀환: B.C. 458년
에스라의 인도-개혁 운동, 예배 확립(성벽의 훼파)
3차 귀환 B.C. 445년
느헤미야의 인도-성벽 재건(B.C.445), 부흥 운동
연대기(사사시대~분열왕국)
이스라엘과 유다왕국 / 북이스라엘 멸망후 팔레스타인
연대기(중간시대)
앗시리아(앗수르) 제국
B.C. 900 년 경에 패권을 갖기 시작
B.C. 722 년에 유대민족의 북쪽왕국인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유대민족을 흩어버림.
남은 유대인은 이방인과의 결혼으로 “사마리아인”이라는 혼혈민족이됨. (유대인의 멸시를 받음: 세겜(그리심산)에서 예배(요4:20))
B.C. 612년까지 지배
예수님 시절: (사마리아인과 상종을 하지않는) 유대인들이 북부 갈릴리지역에 살고있음.
여러 차례에 걸쳐 바사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살 곳을 찾아 여기저기 흩어짐
앗시리아 제국 (B.C. 671년경)
바벨론
B.C. 612-536년에 세계를 지배
느부갓네살 왕은 B.C. 606년에 유대 민족의 남쪽 왕국 유다를 정복
B.C. 586년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을 파괴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70년간 바벨론에 종살이를 함 (i.e., 70년간 유다를 지배)
바벨론에 잡혀간 고급인력은 왕궁에 등극되기도함
다니엘과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심
잡혀간 레위인, 제사장 중심으로 율법이 가르쳐지고, 유대인의 정체의식을 고수함
바사의 고레스에 패해 멸망
메대와 신바빌로니아 제국 (B.C.560년경)
바사 (페르시아)
B.C. 536년부터 B.C. 332년까지 존속 (약 200년간 통치)
초대왕 고레스는 유대인을 바벨론 노예생활에서 풀어주어 돌아가게 해 줌.
성전 재건,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역할을 함
바사의 왕들: 고레스, 다리오 1세,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1세, 다리오 2세, 아닥사스다2세, 다리오 3세
유대 지도자들: 다니엘, 스룹바벨, 예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포로시대의 거의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바사의 영향력 아래있었음.
예수살렘으로 귀환, 성전재건, 성곽재건, 개혁운동을 통해 새로운 포로귀환 공동체가 생김.
후대에 이 공동체를 ‘유대교’라고 명명함 (구약의 왕국시대까지는 유대교란 이름을 쓰지 않음: 나라가 없어진 이후의 새로운 공동체그룹이 형성되면서 ‘유대교’란 이름으로 일반역사속에 남게 됨)
페르시아 제국 (B.C. 500년경)
헬라(그리스)
헬라의 지배는 B.C. 332년부터 B.C. 167년까지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정복으로 헬라(그리스) 문명을 퍼뜨림.
바사의 다리우스 3세와 마게도냐의 알렉산더는 거의 같은 시기에 각각의 나라의 왕드로 즉위
알렉산더: 어린시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운 사람. 온세상을 헬라화 시키려는 꿈을 갖음. B.C. 323년에 죽음.
헬라어: 예수님 시절의 세계적언어
알렉산더(헬라)제국 (B.C.323년경)
헬라(프톨레미 왕조)
알렉산더의 후계자
프톨레미: 이집트 지역을 차지 (친 이스라엘 정책)
이후, 프톨레미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게 됨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헬라인이 다스리는 이집트’의 속국이 됨: 100년간 팔레스타인을 다스림.
셀레우코스 (셀루키드): 바벨론 땅을 갖게됨
유대공동체에 영향
프톨레미 1세: 팔레스타인 원정중 많은 포로를 이집트로 데려옴.
수도: 알렉산드리아 (지중해연안)
이 도시에만 100만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있었다고 함.
이집트에 살고있는 유대인들은 히브리말로 쓰여진 구약성경을 가지고 공용어인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만들게됨
B.C. 3세기경, 프톨레미2세의 명령에 의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 (칠십인경, 칠십인역) : 헬라화 작업의 일홤으로.
헬라(셀레우코스 왕조)
팔레스타인 지역: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의 땅. 프톨레미왕조가 팔레스타인을 훔친 것으로 여겨옴.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가 이집트 군대를 격파하고, 그들을 팔레스타인에서몰아냄 (B.C. 198)
안디옥 교회도 ‘안티오쿠스’ 가문의 이름.
수리아 안디옥, 비시디아 안디옥등 안디옥이란 이름의 도시를 16개내 건설함.
셀레우코스 1세: 유대인에 호의적
포로 석방령, 세금 면제
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길 수 있도록 함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잔인한 유대교 탄압
이유: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와 격전에서 패해 막대한 조공을 바치게 됨. 이집트의 프톨레미 6세도 다시 팔레스타인을 찾고 싶어 위협을 강함.
내정을 정돈 치위해 정복국을 헬라를 구심점으로 통일 시키려함.
종교적으로 헬라의 신들을 섬기도록 강권
B.C 167년 유대인 양민을 학살: 유대인들에 대한 특혜를 폐지하고, 유대교의 모든 관습을 금하는 칙령을 공포
희생제사, 안식일, 절기 지키는 것을 금하고, 율법의 사본을 파기하는 명령을 내리고, 할례를 금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제우스 신의 제단을 세움.
마카비 혁명(운동,전쟁)
유대가문의 맛다디아는 그의 아들들과 탄압에 궐기함: 마카비 (Maccabee)는 맛다다아의 셋째아들 유다의 별칭 (쇠망치란 의미)
B.C. 166년에 유다가 반란을 일으켜 안티오쿠스 4세에게서 독립: 이후 100년간 마가비 가문은 독립을 함.
마카비 후계자들이 유대인을 다스리게 되는데, 이 왕조를 ‘하스모니안 왕조’라고 함.
B.C. 165년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케하는데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 수전절임.
B.C. 63년에 로마제국에 정복될 때까지 유대인들에 의한 통치를 함.
침묵기의 대부분의 영적인 활동이 있었던 시기
마카비 시대의 유대교 부흥
마카비 운동의 시작은 다섯형제의 아버지 맛다디아 였습니다. 유대 공동체 (국가가 아님)내에서는 제사장들이 중심인물이었기때문에 늘 신정적 통치가 있었고, 사회를 이끄는 지도급은 성전중심의 지도자들이었음.
안티오쿠스4세의 학정은 성전을 핍박하는 것: 따라서 그것과 싸운 것은 ‘성전문화’를 고수 했다는 의미
따라서 전쟁 이후 제일 먼저 성전을 청결케 함.
마카비 시대의 유대교 부흥
유대교가 제도적으로 다져지는 시대
여러 종주국의 지배 이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었던 마음
마카비 시대에서 발전된 유대교가, 에스라시대 이후로, 신약시대 즉 예수님 시대의 영적 배경이 됨.
율법중심: 하나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성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된 이 새 공동체는 토라를 연구 하고 가르치는 일이 가장 기본이 됨.
안식일, 할례, 정결의식, 십일조, 성전과 제사규례등을 강조
이스라엘: 율법을 중심으로 결속한 유다의 남은 자들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었음.
따라서 율법은 유일무이한 최고가 된 것이며, 그들의 상징이었음.
율법을 높이다 보니 그 율법을 나타내는 제사행위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슴. (맛다디아는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 혈통)
따라서 누가 대제사장이냐? 가 곧 누가 권력가냐? 로 대치됨
예수님의 공생애 첫 유월절에 성전안의 제물파는 사람을 내 쫒음
부패하기 시작한 대제사장 부류들이 장사하고 있던 시절.
헤롯왕조
에돔지역 정복:
하스모니안 왕조의 4대때에 이르러 예루살렘동남쪽의 이두메(에돔지역)까지 정복
‘안티파스’ 총독 (B.C. 78년 사망)
이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총독을 둠
원래 에돔을 다시리던 왕이었슴.
나중에 예수님을 죽이려했는 헤롯 (대헤롯:마2:1-12)의 할아버지임.
헤롯의 반역
헤롯가문은 친로마 정책을 폄.
이후 로마를 등에 없고 마카비 왕조에 반역하여, 유대의 왕 자리를 빼앗아 감: 예수님 탄생시 유대의 왕으로 에돔 사람 헤롯대왕이 있었고, 그 위에 로마라는 큰 지배세력이 버티고 있게 된 것임 (이중 지배구조의 압제하에 고통을 당하게 됨).
로마
로마는 B.C. 8세기 경 이탈리아 반도의 중간에서 생겨난 작은 도시국가
B.C. 270년경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
검투를 즐기며 노예들을 검투사(스파르타쿠스=검노)로 만듬
10만 검노들의 반란을 일으키고, 원로원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폼페이, 크랏수스를 임명.
이후 이 두사람은 케자르 (즉, 율리어스 시저: 가이사)를 더 가입시켜 원로원을 누르고 3두정치를 시작함.
B.C. 63년에 폼페이 대왕에의해 팔레스틴(유다)이 정복됨
A.D. 500년까지 계속됨
에돔 총독이던 안티파터는 폼페이를 도와 예루살렘 정복에 일조함.
마카비 하스모니안 왕조의 힐카누스 2세는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기로함 : 이후 왕이 아닌 대제사장으로 유다를 다스림
집정관 안티파터 (안티파스의 아들, 대헤롯의 아버지): 로마는 집정관이란 이름으로 안티파터가 유대지역을 다스리게 해 줌.
로마 (2)
폼페이의 죽음: 가이사와 패권싸움중 이집트에서 가이사에의해 줌임을 당하고, 가이사는 클레오파트라를 만남.
이집트 프톨레미왕조의 클레오파트라는 여왕이 됨
가이사는 이후 아프리카와 스페인 싸움에도 승리하여 로마의 영토를 넓힘.
최초로 로마를 통일천하하는 주인공이 되며 힐카누스 2세와 안티파터는 가이사를 섬김.
힐카누스 2세: 한 지역의 총독정도로 임명
안티파터: 유대의 행정관으로 임명
안티파터의 작은 아들 헤롯 (= 대헤롯):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
가이사의 죽음: 충신 부루투스에 의해 (B.C. 44년)
가이사는 최초로 천하통일을 했어도 황제라 칭함을 받지는 못함.
이후, 로마의 힘 싸움은 가이사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와 가이사의 신하였던 ‘안토니우스’ 두사람에게 옮겨감.
이 와중에 안티파터는 살해를 당하고, 대헤롯은 정치적 곤궁에 빠짐: 파르티안 (바대) 사람과 하스모니안 가문의 안티고누스가 힘을 합쳐 헤롯을 공격.
헤롯은 이집트로, 이 후 로마로 피신.
헤롯이 유대의 왕이 됨.
로마로 쫒겨간 헤롯의 로비할동으로 로마원로원은 헤롯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
로마군의 지원으로 다시 예루살렘성을 빼앗고 유대의 왕으로 등장
B.C. 37년 ~ B.C. 4년 (예수님의 탄생하시던)까지 유대를 통치함
로마 (3)
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 황제
동부지역(수리아, 터키)을 장악했던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짐
가이사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과의 해전에서 승리하여, 로마의 대권을 차지하게 됨, 그리고 최초의 황제가 됨.
예수님 탄생시절의 로마황제임.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에있는 사람들은 다 호적을 하라고 하여 요셉과 마리아도 그들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내려갔음 (눅2:1)
가이사
황제 명칭을 최초로 가진 사람이 가이사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숭고한 사람’이란 칭호를 나중에 받음)였지만 ‘가이사란 이름이 통상 ‘로마황제’를 상징하는 칭호로 쓰임: 그래서 성경에서도 ‘가이사’하면 황제를 가르킴.
그리스도의 탄생
로마의 아구스도 황제시절
팔레스틴 통치권은 헤롯대왕에게 있었음.
경제적인 어려움
로마제국의 3명중 2명은 노예로 추정됨
세리: 백성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무겁게 징수
헤롯
대헤롯 (B.C. 37~ B.C. 4)
헤롯가문을 유다의 왕으로 자리매김을 한 사람
“식민 백성은 유대인, 꼭두각시 왕은 에돔사람, 실권은 로마인”
이후 여러명의 아들들이 유대를 나누어 통치 (분봉왕)
안티파스: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 (요단 동편)
빌립: 갈릴리 북동부 지역
주로 이방사람들이 사는 곳. 데가볼리지역.
가이사랴 빌립보를 세움 (대헤롯이 세운 가이사랴와 다름)
아켈레오: 유다, 사마리아, 이두메 (에돔 지역) (마2:22)
헤롯 안티파스 (B.C. 4 ~ A.D. 39)
대헤롯의 아들, 아켈라오 동생
B.C. 78년에 사망한 최초의 에돔 왕 안티파스와 이름이 같음.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렸던 분봉왕
헤롯빌립(분봉왕 빌립은 아님)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
세례요한이 이 사건을 질책. 결국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임
이후 예수님 활동시절 요한이 살아난 것이 아닌가 초초해함 (눅 9:7)
마지막에 예수님은 이 헤롯에게 심문을 받음.
헤롯(2)
헤롯 아그립바
예수님의 공생에 시절의 헤롯가문들은 이 후 사도바울이 선교하는 동안에도 계속 나타남.
예수님의 승천이후 사도행전 시절의 헤롯왕가 이름이 바로 ‘아그립바’ 임.
분봉왕의 자식이 아닌 대헤롯의 형 (분봉왕들의 삼촌)의 혈통을 타고내려온 다른 계열 사람임.
아그립바 1세
야고보를 칼로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결국은 충이 먹어 죽은 헤롯왕 (행12장) 입니다.
아그립바 2세
A.D. 55년 경에 이르면 갈릴리와, 데가볼리,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됨
헤롯 가문의 마지막왕으로 A.D. 100년경까지 다스림
바울의 예루살렘체포 이후 가이사랴 감옥에 억류되어있을 때 아그립바2세가 유대지역의 새 총독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가이사랴 (대총독의 관저가 있던)로 방문을 옴. 그 당시 바울이 그들 앞에서 간증을 함 (행 25-26장)
헤롯 왕가
시기: BC 37 ~ AD 93
예수님 당시의 헤롯 왕국
총독
분봉왕 아켈라오
유대, 사마리아, 에돔지역의 분봉왕
가이사 (아우구스투스)의 유화정책을 무시하고, 야만, 독재적 정치를 함
백성의 폭동때 아켈라오는 2000~3000명을 죽임
이 일로 폭동이 심해지고, 로마의 개입으로 진정이 됨
백성들의 청원으로 가이사는 아켈라오를 로마로 소환/추방
이후 유대, 예루살렘지역만 (갈릴리는 아님) 분봉왕이 다스리지 않고 직접 로마의 직영으로 들어감: 즉 ‘총독’이 파견됨.
빌라도는 5대 총독이었음 (A.D. 26~36: 예수님 당시)
원래 총독은 가이사랴(지중해변)에 있는 관저에 머물렀으나,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는 마침 유월절이어서 소동을 염려해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관저에 와 있었고, 헤롯 안티파스도 같은 이유로 성안에 자기 관저에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이동이 가능했음)
산헤드린공의회
유대인 최고 자치 의결기관
유대사회 지도자급 71명으로 구성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파사람등
산헤드린 공의회
모세시절 백부장, 오십부장들을 장로(신27:1)라고 부름
이들은 이 후 여호수아, 사사시대를 지나면서도 계속 백성의 대표로 유대사회에서 역할을 함
이렇게 ‘장로’,’귀인’,’방백’들이란 이름으로 있어오다가 신약에서는 ‘산헤드린이른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여짐.
대제사장
산헤드린의 대장 ()
유대공동체는 신앙 공동체 였기때문에 에스라 이래로 대제사장이 지도자가 된 것임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이 산헤드린의 주역이었음.
종교당파로는 사두개파였음.
그러나 로마나 헤롯이나 총독에 붙어서 자기의 권력을 즐기며 백성을 착취하는 세력으로 쉽게 타락하곤 했음.
서기관,율법사,랍비
에스라이후 중간기를 지나면서, 율법을 쉽게 가르칠 수 있도록: 서기관, 율법교사, 지혜교사, 랍비가 생겨남
구체적인 율법의 적용/해적의 문제들도 서기관, 율법사들이 연구, 명상함.
유대교의 여섯 파벌 (1)
사두개인 (합리주의자)
상류층, 바리새인과 전통을 강하게 반대 (제사장적 귀족집단)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지주들이며 명칭은 다윗시대 제사장 사독에서 유래
부활과 영혼의 영원성에 대한 믿음을 거부 (철학교사와 논쟁을 미덕으로)
A.D.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사라짐
바리새인 (율법주의자)
보수주의, 정리적 분리주의자, 중류층
그들 스스로를 거룩히 생각하며 의식상 부정한 것을 엄격히 구별함
백성들의 인정을 받았음 (제사장 그룸이 엉터리임을 알았기에)
서기관 (전통주의자)
율법을 가르치고,해석.일반적으로 높은 존경을 받음
그리스도를 미워함
유대교의 여섯 파벌 (2)
헤롯당 (현상유지파)
헤롯가문의 권력 유지에 전념하던 유대인들
예수님을 정치적 반동주의자로 여김
열심당원(정치행동자)
헤롯당의 정치적 반대파, 종교적 당파가 아닌열성적 민족주의 집단
마카비 운동에 그 기원을 둠 (맹렬한 반로마주의자이자, 유대 종교지도나나 기득권들에도 적의를 품었음)
토라(모세율법)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사람들 (언제나 칼을 품고 다님)
모세시절과 같이 신정정치(神政政治)로 돌아가길 원함
에세네파 (엣센파: 고립주의자)
고립주의의 극단론자
광야에 은둔하는 수도사적 성격을 가짐
쿰란지역의 사람들이 살지않는 동굴에 은둔함으로 일상생활과 종교생활의 부패를 피하려 함.
70인역 성경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판
B.C. 25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짐
12개 유대지파의 각 6명씩이 참여 (72명)
외경- 15가지의 종교적 서술로 구성
신약성서시대 / 현대 팔레스타인지명
성전(1): 솔로몬성전
성전 건립
솔로몬이 집권 4년부터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12년째 되던 해(BC 1005)에 7년에 성전을 완공
이 성전 건립에 소요된 감독자가 3,300명이고, 인부가 10만명이 동원되었으며 성막의 두배의 크기로 건축했다. (왕상 6장, 7장, 대하 3장, 4장)
솔로몬 성전의 파괴
성전 헌납 후 34년, 솔로몬의 사망 후 불과 5년째 되던해부터 성전의 영광이 쇠퇴하기 시작
그것은 솔로몬이 우상숭배하는 여인들의 간계에 이끌리어 완악한 길에 빠졌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에 죄악이 만연되었기 때문.
이 때에 애급왕 시삭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성전의 보물을 무수히 몰수해 갔고 (왕상 14:25-26)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성전의 성물을 훔쳐가서 바알신에게 바쳤다. (대하 24:7)
시삭왕의 약탈 후 수세기에 걸쳐서 신성모독 행위가 계속 되다가 216년 후에 유다왕 아하스가 성전의 남은 보화를 앗수루왕에게 뇌물로 바쳐 성전은 집체만 남게 됐다. (왕하 16:7-9, 17, 18, 대하 28:24-25)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은 성전에 남아있던 소수의 보물마저 모두 약탈한 후 건물에 불을 질렀다. (대하 36:18-19, 왕하 24:13, 25:9) 이것은 (렘 2:5)의 예언의 성취다.
그리하여 주전 600년까지는 이스라엘에 성전이 없었다.
성전(2): 스룹바벨 성전
이름
성전 재건의 공사감독자의 이름을 부쳐서 "스룹바벨" 성전이라 칭했다.
재건 및 파괴
스룹바벨 성전은 BC 516 바사의 다리오왕 6년 3월 3일에 재건 헌납되었다.
(스 6:15-22) 이것은 하나님의 지시로 건설된 것이다. (대하 36:23)
B.C.169년에 더렵혀 진 스룹바벨 성전은 예수 탄생시까지 5세기의 긴 세월동안 파괴되어 있었다.
스룹바벨(Zerubbabel)
스룹바벨은 바사 왕 고레스의 허락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함께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 총독이다(스 2:1~64).
그는 여호야긴 왕의 손자로 브다야의 아들이다(대상 3:19).
스알디엘의 아들로도 나오는데(마 1:12) 스알디엘이 조카인 스룹바벨을 아들로 삼았거나 스알디엘이 죽은 후 동생 브다야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마 1:13, 눅 3:27).
스룹바벨은 학개를 통해 ‘하나님의 종’이라는 칭호를 들었으며 하나님의 날에 ‘인을 삼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학 2:23).
이러한 스룹바벨은 친히 종의 신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었다(빌 2:7). 또한 그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성전을 다시 지었던 것에서 그는 참 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이었다(요 2:18~22).
스룹바벨은 메시아 계보의 주요 인물이 되었고, 양쪽 계보를 묶는 연결고리와 같았다.
성전(3): 헤롯 성전
B.C. 16년 경에 파괴된 스룹바벨성전의 대보수공사가 시작되어 1년 반 만에 건물만 완공되었고 주후 63년 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예수께서 성역을 베푸실 때는 공사가 46년째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 2:20)
헤롯성전의 특징
성전재건 사업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작되지 않고 헤롯의 정치목적을 위해 시작됨
성전의 권위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보다 건축물의 장엄함과 우수함에 있었
그 안에서 행해지는 의식은 대부분 주님의 계시에 의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임의로 만든 것이다.
제사장의 오만과 강탈 상인들의 이기적 사욕으로 더럽혀 졌다.
그러나 주님은 성전을 아버지의 집으로 인정하셨다. (마 21:12)
헤롯성전의 완공과 파괴
헤롯성전의 증축공사는 예수 승천후에도 30년 간이나 계속했으나 거의 완공될 무렵에 로마의 디도(Titus) 군에게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 때 유대인의 학살과 포로가 시작 되어 유대인은 세계의 방랑객이 되었다. 이 날이 바로 주후 70년인데 먼 옛날 바벨론 왕에게 파괴 소실되는 그 달 그 날 이었다. (조세푸스 유대인 전쟁 6권 4:5-8 페이지)
신약성경 개관
USCGS – Sep 22, 2006
소망방 (손동진)
신약 (총 27권)
복음서 (4권)
마태,마가,누가,요한
역사서 (1권)
사도행전
서신서 (21권)
바울서신 (13권)
(초기서신) 데살로니가전,후 (주요서신), 갈라디아, 고린도전,후,로마서 (옥중서신) 에배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빌레몬서 (목회서신) 디모데전,후, 디도서
일반서신 (8권)
By 요한: 요한1,2,3서
By 베드로: 베드로전,후
By 유다: 유다서
By 야고보: 야고보서
작자미상: 히브리서
예언서 (1권)
요한계시록
신약성경 (연대기)
4복음서 비교
사복음서 비교
예수의 생애 구분
탄생과 어린시절
세례, 시험, 공생애 시작
초기 유대전도(~예루살렘사역) (8개월)
갈릴리 전도 (약 2년)
베레아 전도와 후기 유대전도 (약4개월)
마지막 주간
부활 후의 전도
신약성서시대 (팔레스타인)
신약성서시대(전체)
사복음서
마태복음: 세리, 예수님 제자 (경험한 예수)
AD 63-67
마가복음: 바나바의 생질,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 (베드로에게 직접들어서)
AD 55-65
누가복음: 이방인, 의사 (사도들에게 듣고, 연구)
AD 63 이전
요한복음: 제자, 어부출신
AD85-95
사도행전, 로마서
사도행전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 (베드로 중심)
선교의 과정 (바울 중심)
역사적 기록, 기행문적 성격
저자: 누가
AD 63년경
로마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바울서신, 복음을 설명
제 3차 전도여행 끝무렵, 고린도 교회가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린도 교회를 방문해서 겨울을 기다리면 씀.
겐그레아( 고린도지방)에 살전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들리워 로마로 전달
로마교회의 후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전도하러 갈 계획으로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이기도 함
AD 58년 경에 쓰여짐
바울의 전도여행
바울의 전도여행 (1,2차)
바울의 전도여행 (3차,로마행)
고린도전서
교회의 문제들
고린도 교회: 2차 선교여행의 중심 사역지
3차전도여행중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있을 당시 작성
분쟁소식을 들음
고전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교회의 문제로 3명의 대표단이 에베소로 바울을 찾아옴
고전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이들의 질문에 대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주는 것이 고린도전서임
이후 고린도교회에 한 통을 편지를 더 씀
고린도 전서를 받고 난 이후 (고린도 전서의 파당, 은사, 음행문제 이외에) 바울 사도를 공격하는 문제가 생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논쟁
디도가 편지(눈물로 쓴 편지라 불림)를 가지고 고린도 교회에 감
고후 2:1-11
디도가 고린도 교회를 잘 평정하고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옴
이 때 바울은 에베로를 떠나 마케도니야(유럽)쪽으로 올라갔고, 디도도 고린도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감
고린도후서
교회의 위로
고린도 교회가 잘 회복되었고, 바울을 진짜 사도로 믿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쓴 편지
고후 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 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전,후서는 56-57년경에 쓰여짐
갈라디아서
AD 52년경에 기록
다메섹의 개종이후 바울의 행적기록
갈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18 그 후 삼 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1차 선교여행이후 예루살렘 총회이야기 (행15:2)을 기록
갈라디아서 2장
1차 전도여행후 예루살렘 총회 어간에 쓰여진 최초의 편지로 봄
유대주의 자들이 교회를 엊럽혀서, 율범과 복음의 관계, 성령에 대해 다룸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것임을 강조
유대주의자들의 공경이 배경이 되어서 할례, 율범과 복음의 관계를 다룸
옥중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배소서(그리스도와 교회), 빌립보서(그리스도안의 기쁨), 골로새서 (그리스도와 세상)
3차 전도 여행이후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체포되어 가이샤랴에서 2년간 억류됨
이후 로마로 호송되어 다시 약 2년간 (1차) 감금 생활을 함
바울의 로마 1차 구금 중에 보낸 편지
로마도착시기: AD 61년 봄. 이후 63년에 풀려낼 때까지 감금된 상태에서 쓴 편지들임
행 28: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골로새
에배소의 인접도시. 바울이 아닌 에바브라에 의해 개척된 것으로 추정 (골 1:27)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이 중요 지도자로 있었음
에배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두기고가 오네시모와 함께 전달
에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데살로니가 전,후서
데살로니가전서 (예수님의 재림과 거룩함), 데살로니가후서(종말과 대환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이었던 A.D. 52년경에 고린도에서 기록한 편지
데살로니가
50만명 정도의 인구. 항구도시로 번화한 유럽(마게도니아지방의) 도시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살로니가 전,후서간 차이는 5-6개월정도로 추정: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를 가지고 갔던 동역자가 돌아온후인 52년경 말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여짐
데살로니가 후서
전서에는 데살로니가 교회 내부가 분쟁없이 조용하나,
후서에는 광신자들의 종말 도래설로 몹시 소란스러워짐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디모데전서 (목회일반), 디모데후서(목회자사역), 디도서(교회지도자이야기)
바울의 1차 로마 감금이후 바울은 풀려나서 (A.D. 62(~63)년경) 계속 전도를 함
4차 전도여행이라 불리기도 함
이 당시 기록된 것이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임
목회서신이라 불림: 목회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임
목회자로서 교회를 어떻게 목양할지,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생활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담음.
바울의 2차 로마 감금
A.D. 64년경의 로마 대화재가 기독교인의 소행이란 누명을 쓰고,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음
A.D 66~67년경에 바울이 체포됨
디모데후서에 이 때의 상황이 자세히 언급됨
1:15, 2:9, 4:6~8
A.D 68년 가을경에 디모데후서가 쓰여진 것으로 보임
감옥에 있음 겨울이 오기전 디모데가 와주기를 바라는 구절로 볼때
디모데후서: 사도바울의 가장 마지막 편지
디모데, 디도
디도는 사도행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바울의 충성스런 조수로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함
교회사에서 디모데, 디도와 같은 사람을 속사도 (사도의 뒤를 이은)라 부름.
빌레몬서, 히브리서,유다서
빌레몬서 (옥중서신중 하나)
그리스도인의 용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한임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집을 탈출하여 로마로가서 사도 바울을 만나 개종을 함
그를 용서해 줄 것을 부탁을 하는 편지임
로마 1차 감금중 쓰여진 옥중서신중 하나임.
히브리서
작자 미상 (사도 바울이라 추정하기도 함)
믿음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알려짐
예수님이 대제사장임을 강조한 책임
유대인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로 보여짐
유다서
종말과 거짓교사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마13:55)가 쓴 것임
예수의 제자 유다(누6:16)가 아님
이단을 경계하고 있는 내용임
A.D. 67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
베드로후서에 기록된 내용과 같은 것을 생각하면, 같은 교회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
베드로후서 3:1에 의하면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에 보낸 것 같음
야고보서
(기독교적) 행위: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
저자: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초대교회의 지도자)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갈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신학을 전제로 함 (야2:24; 롬3:28)
따라서 최소바울의 저술 연대인 A.D. 57년 이후에 쓴 것으로 보여짐
야2:24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행실을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 논박하고 있음
바울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유포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
흩어져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임
야고보서 (참고구절)
야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23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베드로전, 후서
베드로전서(고난과 섬김), 베드로후서(종말과이단)
사도 베드로가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
A.D. 64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닥친 핍박을 배경으로 함 (네로의 그리스도 박해 64-67년)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쓴 편지임
베드로전서 5장 13절의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AD 66년경에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
바울이 66년경에 순교하지 곧 이 편지를 써서 바울의 동역자였던 실라에게 주어 바울이 세운 교회에 보내어 그들을 고난 중에도 견디라고 격려했던것으로 보임
벧전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베드로가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으며, 그리스도도 고난을 받으며 일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고있음.
마가
마가는 베드로와 함께 있으며 이 당시 복음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됨
벧전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요한 1,2,3서
요한일서 (교회와 교제), 요한이서 (교회와 이단), 요한삼서 (교회와 생활)
요한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했다고 함
에배소 주의의 교회에 보내는 회람 편지로 여겨짐
A.D. 90~96년 경
특별히 사랑을 강조함
복음의 필수적인 내용을 강조하고, 이단을 경계할 것을 적음
당시 이단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한 것으로 보는 영지주의 계통이었으며,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함
요한
예루살렘을 본거지로 하여, 예수의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돌보고, 예루살렘 멸망이후 거주지를 에베소로 옮겨 사도시대의 끝에는 에베소를 기독교의 중심지로 만듬 (복음서, 세편지, 계시록을 기록)
요한계시록
종말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1:9) 생활할 때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환상중에 받고 기록한 책
일곱교회에 보냄 (1:1,4)
A.D.96년 즈음: 96년에 석방되어 에배소로 돌아옴
로마가 공공연히 기독교를 박해할 무렵
로마에 화재가 났던 네로의 박해 때 보다 후대인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때로 봄: 자신을 신격화하여 ‘우리 주’, ‘우리 신’으로 부르도록 명했음
짐승과 짐승의 우상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계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핍박가운데 있는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와 교회가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전해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쓰임.
바울
바울의 출신
① 바울은 헬라 유대교 출신이다. 사도행전에서 그가 길르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음에 대해 밝힌다.(사도행전 9:11, 21:39, 22:3)
② 바울의 가족은 엄격한 유대교 집안이었고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자손이었다.
③ 그는 출생한 지 팔일 후에 할례를 받았고 스스로를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고 말했음에도 그는 그가 가진 이스라엘적인 기원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④ 그는 또한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파의 한 사람이었다(빌립보서 3:5)
⑤ 그는 팔레스틴에서 그 당시 유명했던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 (사도행전 22:3)
바울의 회심 (행9장)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바울의 생애
원래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32년) 예수를 만나 회심
42-44년 안디옥 (44년경 가난한 자들의 부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감)
45-48년 1차 전도여행
50년경: 예루살렘회의 (이방인의 할례)
50~53년: 두 번째 전도 여행
54~57년: 세번째 전도여행
58-60년: 가이사랴에서 죄수로 있음
61~63년: 죄수로 로마에 감금 (사도행전의 끝)
65~66년경 헬라와 소아시아로 돌아옴
67년경: 로마에서 목잘려 순교함
바나바
구브로의 레위인
요한 마가의 사촌 (골4:10)
마가의 어머니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장소 (행12:12)
지도적 인물 (행14:12)
선량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 (행11:24)
예루살렘의 제자들을 설득시켜 바울을 받아들이게 함 (행9:27)
안디옥의 이방인들을 영접하기 위해 파견 됨 (행11:19-24)
바울을 다소에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옴 (11:25-26)
바울의 첫 번째 전도여행에 동참
요한
아버지는 세배대 (마4:21), 어미니는 살로메(마27:56, 막15:40, 요19:25)
에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자매인 것으로 추정
어린 시절 부터 예수를 알았을 것 같음
재산이 있는 어부 (막1:16-20)
삯꾼을 두고 어업을 함
예루살렘에 집을 가지고 있었음 (요19:27)
대제사장과 개인적인 안면 (요18:15-16)
세례요한의 제자
요1:35, 40
별명: 우뢰의 아들 : 막3:17
격렬하고 난폭한 성격
막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예수님의 12 제자
시몬 베드로
사도 요한
(대) 야고보
세리 마태
(소)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메
다대오
가나안 시몬
가룟 유다
기타
이신칭의 vs. 이행칭의
(로마서 vs. 야고보서)
야고보서: 기록목적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유대 지방의 정치적 상황은 로마의 총독들에 의해 다스려 지던 때였습니다. A.D 60-62년에 다스리던 총독 베스도(Festus) 때에는 바울의 재판 문제로 유대인 지도자들과 총독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더욱이 당시 황제였던 네로(Nero, A.D.54-68)는 기독교에 대해 전면적으로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곳에서도 여러 고난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들을 위로하고 인내하도록 권면할 필요를 느끼고 본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성도를 지도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흩어져 유대 공동체 생활을 하던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행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성도간의 사랑이 식어지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져서 교제가 단절되는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야고보는 그런 상황에 대한 보고를 접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를 느끼고 본서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서신과 야고보서의 관계 (1)
- 이신칭의 vs. 이행칭의
로마서의 주제가 이신칭의(以信稱義)라면 야고보서는 이행칭의(以行稱義)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빌립보서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를 말하고 있고 (롬3:28, 갈2:16, 빌3:9),
야고보서에서는 '사람이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행칭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약2:24). 바울의 주장과 야고보의 주장이 서로 모순되는 듯 해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서신과 야고보서의 관계 (2)
- 이신칭의 vs. 이행칭의
바울이 말한 이신칭의 공식은 항상 유대교의 특권의식과 논쟁하는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바울이 '일반적인 행위'가 아닌 '율법의 행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는 의를 획득하기 위한 통로로 간주되었던 율법을 거부하고 믿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신칭의론은 이방인 개종자들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한 약속에 진정한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는 권리를 옹호하려는 독특하고도 제한된 목적을 위해 창출되었습니다.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충분한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신칭의론이 자칫 상실될 뻔 했던 이방인 크리스천의 권리가 보호한 것입니다.
바울서신과 야고보서의 관계 (3)
- 이신칭의 vs. 이행칭의
야고보가 말한 이행칭의 공식에서 '행위'는 주로 '일반 행위'를 말한다. 일반 행위와 관련된 행위는 1:4와 2:14을 포함하여 11번 사용됩니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위가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 하고 말하면서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행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일반 행위를 말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위는 율법의 행위를 말하기 보다는 단지 기독교적 사랑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 성도들이 믿음만 강조하고 서로 사랑의 행위를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는 사랑의 행위를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서신과 야고보서의 관계 (4)
- 이신칭의 vs. 이행칭의
바울의 사상과 야고보의 사상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용어의 다른 사용법을 통해 각기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상과 야고보의 사상의 경우는 양자 택일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로 '(기독교적) 믿음'을 옹호하고 '(유대교적) 행위'를 비판하는 반면,
야고보는 주로 '(유대교적) 믿음'을 비판하고 '(기독교적) 행위'를 옹호하고 한 것입니다.
곧 바울은 기독교적인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야고보는 기독교적인 행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야고보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에게 당연히 사랑의 행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두 강조점은 모순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것입니다.
성경공부의 필요성?
성경공부는 왜 하는가?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화란 무엇인가?
신약 상 (중간사, 4복음서) 성경공부의 focus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로마서 5:1-6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1. 복음의 출발점
복음은 인간이 개조되거나 개선될 수 잇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 앞에서 몹시 자존심 상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
‘인간은 구제불능의,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죄인’ 이라는 하나님의 진단을 받아들이는데서 신앙의 논거가 마련된다.
“죄란”
하나님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하고 싶어하는 것. 하나님 앞에 보란 듯이 ‘선물’을 들고 가고 싶은 것
“제가 지옥갈 죄인인데, 구해주십시오’라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죄는 근본적으로 도적성이나 윤리성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교묘하게 천사의 모습으로까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그 엄청난 아픔에 대해 슬픔의 갑정을 같기보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이만큼 철저하게 이를 갈고 계시는 구나 라고 바꾸어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닌 공통적인 문제는 구원을 얻는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도 진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인간의 상태
사람들이 우상을 믿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적으로 타락.. 하나님을 알수 없는 상태
지렁이가 매니큐어를 생각할 이유가 없듯이.
질문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신다 vs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기타: 주어진 구원은 취소될 수 있는가?)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는 예수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는 예수(2)
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는 예수(3)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구원 그이후에 우리의 할 일?
다윗: 물맷돌…. 연극시 정확히 골리앗의 머리에 맞는..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어느 누구를 쓰셔도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연습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행함만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그 일을 하는 자리에 나가있기를 원하신다. 그게 전부인게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거기에 붙어있는 가지란 성경말씀을 잘 기억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통로이고,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담대히 그 일을 행하기만 하면되는 것이다.
B.C. and A.D.
B.C는 Before Christ 의 약자. 예수님이 태어난걸 기준으로 B.C. 와 A.D.로 나뉨. A.D는 아노 도미네 (anno domini)
서력기원은 스키타이 출신의 로마의 수도사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525년 교황 성 요한네스 1세의 요청으로 부활절의 정확한 계산법을 산출하여 지은 "부활절의 서"에서 처음 사용
당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즉위 기원을 사용했는데, 엑시구스는 "대박해자의 이름을 영속시키지 않고, 우리 주 그리스도의 현현(顯現)으로부터 햇수를 세기 위해" 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를 기원원년으로 한 서력기원을 시작함.
하지만, 그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잘못 계산하였음. 실제로는 그의 결과보다 4-6년 전이었죠).
집정관(consul)을 임명하기 시작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5-305) 이전에는 임기 1년의 선출직이었던(제정 시대에는 이름뿐이었지만) 집정관 이름을 써서 나타냈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집정관이었다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집정관이었던 해"라는 식이었습니다.
기타 성경공부 주제
기도
바른기도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기도응답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바른) 예배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 나라란? 천국이란? (
구원? 성화? (구원 그 이후 우리의할 일: 성화에의 길), 고난의 의미
구원의 확신 (확실성)
믿음이란?
구원 이후의 믿음.
성경인물정리
구약내용 간단 정리
성경 중 공부하고 싶은 성경 몇 권을 공부
율법의 의미에 대해
성경의 각 절기에 대해
성경 지도연구
거룩이란 ? 어떻게 거룩해 지는가?
성령? 삼위일체?
교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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